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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7-27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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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무대는 끝나지 않는다, 다만 깊어질 뿐

드럼·모델 거쳐 연극까지…도전하며 사는 이병철 씨

기사입력 2025-12-2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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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50플러스센터 1층 카페. 원두를 글라인더에 가는 소리가 멈추면 어느새 공기 사이로 커피향이 비집고 나와 공간을 채운다. 이 멋진 향과 그윽한 맛을 내는 이가 바로 이병철 씨다. 이곳에서는 한 달에 10번 나와 바리스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지난 9, 인생 첫 연극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제 더 할 게 없다며 호탕하게 웃던 그는, 어느덧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날레이자 새로운 서막을 동시에 지나고 있다. 모델과 배우, 사진작가, 가죽공예가 등으로 불리는 그의 인생 2막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장르다.

 

나이 오십,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문턱

이병철 씨의 인생 2막은 남들보다 조금 이른 50대 초반에 시작됐다. 운영하던 사업을 정리한 뒤 그가 향한 곳은 강서농협이었다. 당시 40대조차 정리해고를 걱정하던 시절, 50대인 그가 경비직에 도전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나이 많다고 다 거절당했죠. 하지만 직접 전화해서 일단 면접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떼를 썼어요. 젊게 봐주신 덕분에 합격했죠.”

그렇게 시작한 농협 생활은 마트 정규직을 거쳐서 만60세 정년퇴직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퇴직 후 힘이 조금이라도 더 있을 때 진짜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기 위해 2018년 스스로 현장을 떠났다.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은 거를 하자. 더 있으면 자꾸 나이만 먹고 힘도 없잖아요. 조금 일찍, 내가 힘 있을 때 퇴직해서 내가 해보던 거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준비해서 하고 싶은 건 다 했어요.”

 

드럼에서 탭댄스, 시니어 모델까지한계 없는 도전

퇴직 후 그의 일상은 독학으로 익힌 드럼과 탭댄스로 채워졌다. 남들이 은퇴 후 등산과 술자리로 시간을 보낼 때, 그는 지하 변전실에서 탭댄스 스텝을 밟았다. 그의 열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가죽 공예를 익혔다. 출중한 외모를 무기 삼아 시니어 모델로서 런웨이를 힘차게 걸었다.

시니어 모델은 남이 나를 봐주는 거잖아요. 내 안에 잠재된 끼를 발견하는 게 참 좋더라고요. 양평 영화제 개막식 패션쇼, 충주 한복 축제 등 여러 무대에 섰죠. 작년에는 삼성전자 사내 광고 모델로도 활동했습니다. 딸아이가 회사 로비 전광판에 나오는 제 모습을 보고 전화했을 때 참 뿌듯하더라고요.”

최근에는 연극 무대에도 도전했다.

코로나 때 시니어모델 수업을 들었는데 그 과정 중에 연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김진근 배우에게 연기를 배웠는데 자연스레 연극에 매력을 느끼게 됐습니다. 일정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올해 강서구 직장인 연극교실이 생겼을 때 바로 지원했습니다.”

공연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상대 배우가 대사를 까먹을 것 빼고는. 그 대사를 까먹은 사람은 사실은 필자다.

대사를 어떻게 외우나 걱정했는데, 막상 무대에 서니 되더라고요. 내 안에 이런 힘이 있었나 싶어 스스로 놀라기도 했습니다.”

강서구직장인연극교실의 굿닥터 공연 장면과 시니어 모델로서 이병철 씨

 

희귀 난치병도 꺾지 못한 삶의 의지

탄탄대로만 같던 그의 도전에도 위기는 있었다. 작년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신 가려움과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검사 결과는 유전성 혈관 부종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희귀 난치병. 하지만 그는 좌절하는 대신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진행을 멈추는 주사 한 대가 백만 원이 넘어요. 다행히 국가 지원을 받아 관리하고 있죠. 몸 상태에 따라 내년에는 연극이나 영화 촬영 같은 강도 높은 활동은 줄여야 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가죽 공예도 있고, AI로 그림을 그리거나 영상을 만드는 기술도 익혀뒀거든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액티브 시니어

이병철 씨는 주변 친구들이 자신을 부러워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다들 멋지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말만 해요. 드럼 스틱을 사보라고 권해도 서너 번 하다 그만두죠. 인생은 변화하려는 의지와 실천의 문제입니다.”

이병철 씨에게 강서50플러스센터는 단순한 일터가 아니다. 세련된 복지관이자, 2의 인생을 설계하는 교두보다. 그는 오늘도 바리스타 앞치마를 두르며 말한다.

나이가 들면 어쨌든 변해야 해요.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뭘 하고 싶은지에 집중해야죠.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실천하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그의 인생 2막에는 아직도 올라갈 무대가 많다. 바리스타로서, 예술가로서, 그리고 곧 태어날 손주의 멋진 할아버지로서 그의 변주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권해솜 기자 (gsyck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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