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호 코팅코리아 대표 ⓒ권해솜 기자
어쩌면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사회 첫발을 내디뎠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일 줄 알았던 대기업을 떠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 다다랐다. 25년간 삼성전자의 재무 전문가로 활약했던 최규호 코팅코리아 대표를 두고 하는 소리다. 거대하고 완벽한 조직과 호흡을 맞추며 우리나라 기술을 세계에 알리던 그. 지금은 옛 명성을 내려놓고 전국 방방곡곡 물길의 새역사를 쓰기 위해 밤낮없이 뛴다. 회사의 경영을 넘어, 대한민국 인프라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사명감, ‘국토회복 작전’의 선봉장으로서 제2의 인생을 힘차게 사는 최규호 대표를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만경읍 대동공단 내에 자리 잡은 코팅코리아에서 만났다.
삼성 ‘DNA’, 철저함을 이식하다: CFO 시절 혁신
1992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최규호 대표는 85학번으로, 군사정권 하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 변혁의 시기, 학보사 영어 신문 기자도 해보고, 당시 대학생으로서 해야 할 행동을 하다 보니 공부에 크게 몰두하지는 못했단다. 대학교 졸업을 1년 앞둔 상황. 부단히 공채 준비를 했고, 당당히 삼성에 합격했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삼성전자에서의 25년. 재무와 경영 관리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고, 말레이시아 TV 공장의 CFO(최고재무책임자)를 맡으며 글로벌 경영 감각까지 익혔다. 하지만 2017년, 그는 퇴사를 결정했다.
“저는 사실 더 높은 자리도 생각하며 삼성에서 일했습니다. 끝내야지 마음을 먹었을 때 저 스스로 삼성과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는 구차하게 머무를 이유 없다고도 판단했죠. 정년까지 가거나 명예퇴직을 선택하면 어느 정도의 위로금을 받습니다만, 저는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습니다.”
그의 결정은 단순한 퇴사가 아닌 일 잘하고 단단하던 베테랑의 퇴장이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는 법. 최 대표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지인이 코팅코리아의 CFO 자리를 최 대표를 추천한 것. 당시 코팅코리아는 사모펀드가 소유한 중소기업이었고, 지방 근무는 그가 생각해 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제가 혹시나 코팅코리아의 제안을 거절할까 봐 선배님들이 안절부절못했어요. 코팅코리아는 수도관과 가스관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더 나아가 강관의 내면과 외면에 모두 폴리에틸렌으로 코팅처리해 내구성과 위생성을 완벽하게 확보한 안전하고 오래가는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미래 전망이 있는 회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때 헤드헌터에게 이력서를 넣은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한 달
반이 지나도 답장도 없고, 일하던 사람이 쉬니 못 견디겠더라고요. 당시 1월 31일에 삼성전자에서 나왔는데, 3월 15일에 코팅코리아에 입사했습니다. 처음에는 좀 막막했어요. 중소기업도 처음이고, 해외나 서울 근무 경험은 있어도, 지방 근무는 처음이었으니까요.”
김제 대동공단에 자리잡은 코팅코리아 ⓒ권해솜 기자
코팅코리아에 출근을 시작한 그는 새벽까지 사무실을 지키며 회사의 모든 것을 파악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연간 한 번 회계사가 결산을 처리해 줄 뿐, 내부에서는 재무 상황을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최 대표는 수작업으로 모든 물동 흐름과 원가를 분석하며 회사의 손익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자 했다.
“처음 두 달, 석달은 거의 매일 새벽 2~3시에 퇴근했어요. 너무 일에 집중하다 보니 아침이 올 것 같아서 억지로 퇴근했죠. 삼성에서 일할 때는 동료와 후배들이 많았지만, 여기서는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했으니 고독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업무에 대한 희열과 엄청난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회사의 전반적인 체계를 바꾸는 데 집중했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던 업무를 ERP 시스템(생산/재고/매출/회계/급여 등 관리)으로 전환하고, 실시간 재고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실시간으로 재고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는 엄청난 차이거든요. 무엇보다 제가 와서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작은 회사들은 인건비에 사무실도 따로 구축해야 하고 당장 돈만 들어가니까 부담스러워하잖아요. 연구소는 단기 성과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 개념이거든요.”
젊은 직원들을 직접 가르치며 재무 및 물동 관리 전문가로 양성했다. 이 과정에서 최 대표는 삼성에서 배운 ‘낭비 요인 제거’ 노하우를 십분 발휘했다. 공장 곳곳의 비효율적인 부분을 찾아내 원가를 절감했다. 심지어는 플라스틱 제품에 부과되던 환경 부담금을 논리적으로 설득하여 제로화하고 소급분을 돌려받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경영의 꽃’ CEO로 피다
최규호 대표의 혁신적인 노력은 2020년 빛을 발했다. 코팅코리아의 실제 주인이 중견 제조기업으로 바뀌면서, 그는 CFO에서 대표이사(CEO)로 승진했다. 새로운 주주들은 그의 추진력과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당시 최 대표는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최 대표는 코팅코리아에 남기로 결정했다.
“아내와 고민했죠. CEO는 차원이 다르잖아요. 편하게 CFO의 길을 갈 수도 있었지만, ‘인생에 한 번은 승부를 걸어보고 싶다’는 열정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삼성전자에서 25년간 쌓은 경험과 이곳 코팅코리아에서 CFO로 일하며 느낀 보람이 저를 CEO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CEO가 된 후, 최 대표는 회사의 외연 확장에 집중했다. 그가 제시한 비전은 바로 ‘국토 회복 작전’. 이는 좋은 제품을 만들고도 특정 지역에 진출하지 못했던 현실을 개선하고, 전국적으로 시장 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하는 대규모 마케팅 전략이었다.
“취임사에서도 말했습니다. 우리 민족사에 두 번의 국토회복 작전이 있었다면, 지금부터 우리는 세 번째 국토회복 작전을 시작한다고. 우리 제품이 전국 팔도 방방곡곡에 진출해야 한다고 외쳤죠. 과거 수도관 시장은 이미 강자들이 있었고, 관급 사업이다 보니 공무원들의 안정 지향적인 성향 때문에 새로운 제품이 진입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우리 제품은 기존에 녹슬고 비위생적인 수도관을 대체할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이고, 최소 50년 이상 수명을 자랑합니다. 최근 젊은 공무원을 중심으로 환경과 경제성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점차 우리 제품의 가치를 알아주고 있습니다. 당장 현실적인 가격보다 결과적으로 교체 비용이나 수명을 생각해 보면 우리 제품도 경제성이 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코팅코리아는 시장 점유율을 4.5%에서 6.6%까지 끌어올리며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경기 침체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 대표는 “다른 경쟁사들은 10~15% 역성장했지만, 우리는 꾸준히 1% 또는 5% 가까이 성장했습니다. 기존 지역의 성장이 정체되더라도, 새로운 지역을 끊임없이 개척해 나가는 전략이 주효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최규호 대표는 CEO의 역할에 대해 “경영의 꽃은 CEO”라고 힘주어 말한다. “CEO는 전략을 수립하고, 전체 부문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큰 기쁨과 환희를 느낍니다. 결과에 대해 정직하게 평가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죠. 직원의 성과에 따라 100%에서 최대 300%까지 인센티브를 지급하며 축배를 들 수 있는 것도 CEO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코팅코리아에서 생산하는 PFP수도관이다. 금속재질의 수도관 안팎을 PE(고밀도 폴리에틸렌)로 코팅하는 방식으로 수도관을 생산한다. 어떠한 물질에도 반응성이 없으며, 물 흡수율이 '0'에 가까워 내부 부식 우려가 없다. ⓒ권해솜 기자
‘젊음’을 향한 집념과 사명감: 사회 인프라를 위한 기여
그는 개인적인 삶의 모토로 ‘젊음’을 강조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호기심, 추진력, 그리고 잘못된 것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젊음의 본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S‧K‧Y 같은 명문대 출신은 아니었지만, 저는 항상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회계 등 모든 것을 배웠고, 끊임없이 저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도 젊은 사고와 행동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제가 아직 그런 자신이 있기 때문에 계속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코팅코리아에서 근무하며 최 대표는 뜻밖의 선물도 받았다고 했다.
“저는 경상도 출신이라 전라도 지역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전국적인 영업을 하다 보니 우리 국토 곳곳의 아름다움을 많이 느꼈죠. 해외를 40개국 이상 다녀봤지만, 우리나라만큼 아름다운 곳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는 코팅코리아의 제품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깊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최근 발생한 땅 꺼짐 사고를 보면서 그는 다시 한번 수도관 사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젊은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망한 사고를 보고 인간적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물론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결국 우리 사회의 인프라가 미비해서 발생한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상수도관 업체로서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우리도 사회 인프라를 구성하는 한 축으로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MBC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조사와 별개로 25개 구가 자체 조사를 한 결과 서울시 조사에서 확인된 329개 이외에, 도로 아래 412개의 빈공간이 추가로 포착됐다. 최 대표는 땅 꺼짐 사고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제품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우리가 모두 안전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수도관 개발과 더 나은 발전을 약속했다.
최규호 대표는 삼성에서의 성공적인 경력을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했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예측 불가능한 삶 속에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의 ‘국토회복 작전’은 단순히 코팅코리아의 시장 점유율 확대를 넘어, 대한민국 인프라의 질을 높이고 국민의 삶을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그의 굳건한 의지와 열정은 지금도, 내일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