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2-08-17 22:13

  • 오피니언 > 칼럼사설

[칼럼] 겸재의 예술혼, 겸재정선미술관에서 피어나다

김진호 강서문화원 원장

기사입력 2022-05-06 18:58

페이스북으로 공유 트위터로 공유 카카오 스토리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문자로 공유 밴드로 공유
0

겸재 정선은 그의 나이 72세인 1747(영조23), 노년의 무르익은 필치가 집약되어 있는 금강산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에 당대 최고의 시인 이병연(1671~1751)과 김창흡(1653~1722)의 시를 수록하여 산수화 21폭 등 총 38폭의 해악전신첩을 제작하였고 예술적, 학술적,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본 화첩은 보물 제1949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 화첩은 세상에서 사라질 뻔한 위기가 있었다. 1933년 골동상인 장형수라는 사람이 용인 양지면을 둘러보다 큰 기와집을 발견하고 물어보니 친일파 송병준의 손자 송재구가 사는 집이었다.

 

장형수는 송재구를 찾아 경성 얘기며 세상 돌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가 무르익다 보니 날이 저물었고 장형수는 하루 묵어가기로 했다.

 

밤이 되어 아궁이에서 하인들이 불을 떼는데, 마침 볼일을 보러 나가던 장형수는 그곳을 기웃거렸고 깜짝 놀랐다.

 

불쏘시개로 쓰려던 것이 초록색 비단으로 꾸민 화첩이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화첩을 달라고 해서 찬찬히 살펴보니 그림이며 글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장형수는 송재구에게 그 화첩을 팔라고 했고 송재구는 장작 값이나 내고 가져가라며 화첩을 내주었다.

 

장형수는 이 화첩을 간송 전형필에게 구입한 값의 10배인 200원을 받으려 했으나 그 화첩을 살펴본 간송은 1,500원을 선뜻 내놓았다 한다. 그때 당시 경성 도심의 그럴듯한 기와집이 1,000원 할 때이니 기와집 1채 반의 값을 치루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낸 것이다.
 

해악전신첩

강서구에서는 겸재 정선이 1740년부터 1745년까지 5년여간 양천 현령을 지내며 경교명승첩이라는 불멸의 작품을 남긴 것을 기념하고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한국화의 중심에 놓고 연구 전시하고자 2009년 겸재정선미술관을 설립하였다.

 

해악전신첩처럼 우리 선조가 지켜낸 소중한 문화재인 겸재의 원화 26점을 보유하고 있고 순환 전시할 뿐 아니라,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한국 그리고 전 세계에 널리 홍보하고 학문적 연구를 열심히 하고 있다. 또한 현대의 화가들이 겸재의 정신을 이어가며 진경산수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게 1년에 10여 차례 이상 관련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국사 교과서에서나 보았을 법한 겸재의 그림들도 보고 겸재의 그 진경산수화가 현대에 있어 어떻게 변화되어 가고 있는지도 느낄 수 있어 행복한 하루를 보낼 곳으로 적극 추천해 본다.

강서양천신문 (gsycky@hanmail.net)

댓글0

스팸방지코드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