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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특별 인터뷰]광복회 강서지회 김각래 회장

“과거는 잊혀선 안 됩니다. 기억해야죠”

기사입력 2015-08-1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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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96주년, 광복회가 창립된 지 50년을 맞는 의미 있는 해다. 일제 통치 하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독립운동가들과, 광복의 날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일제의 총칼에 스러져 갔을 당시의 이름 모를 무수한 영혼들을 떠올리면 70년 전의 오늘(8·15)이 그저 휴일로만 여겨져서는 안 될 터.

다들 일제강점기라고 하면 1919년의 3·1독립만세운동부터 떠올리지만, 일제의 간섭은 1895년 을미사변부터 시작됐고 일본에 항거하는 운동 역시 그해부터 지속돼 왔습니다. 그렇게 보면 항일운동은 우리가 기억하는 36년이 아닌, 50년간 이어져 온 것이지요.”

김각래(70) 광복회 강서지회장은 45년생 해방둥이로 굴곡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 온 탓인지 70주년 광복절을 맞는 감회도 남달랐다. 게다가 그의 할아버지는 독립운동에, 아버지는 6·25전쟁에, 자신은 월남전에 참전하며 3대가 모두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그 참상을 몸소 경험했다.

저희는 3대가 다 전쟁을 겪었는데, 가족들은 그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가장 으뜸이셨다고 말합니다. 6·25는 나라가 있는 상태에서 지원을 받으며 전쟁을 한 것이지만, 일제시대의 독립운동은 나라를 잃은 상태에서 광복만을 바라보며 국민이 힘을 합쳐 싸운 것이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월남의 패망을 두 눈으로 지켜본 김 회장이기에 나라를 잃는다는 것이, 그리고 조부의 독립운동이 얼마나 고됐을 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의 조부인 김철기 애국지사는 양양에서 유관순 열사의 올케인 조화벽 애국지사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

그가 어머니에게 전해 들은 말로는 기골이 장대했던 할아버지가 원산 감옥에 3년간 투옥돼 있으면서 고초가 얼마나 심했던지 뼈만 남아서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영창에 가 있는 동안에는 큰집 할아버지를 비롯해 집안에 일하는 일꾼들까지 모조리 일본 순사들에게 잡혀가 매질을 당했고, 가까스로 돌아온 이들은 일 년씩 병상에 누워 있을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았다.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으로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된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얼마나 좋은 건지, 이 나라를 어떻게 되찾은 것인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신채호 선생은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젊은이들이 이번 광복절을 계기로 과거의 수난과 고통의 역사를 되새기고, 나라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로 5년째 광복회 강서지회장을 맡고 있는 김각래 회장. 그는 국가유공자에 대한 관심과 처우 개선도 당부했다.

광복회는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생존 지사와 순국선열 애국지사의 후손들로 구성된 공법 단체다. 현재 전국을 기준으로 13701명이 수훈자로 등록돼 있다. 이 중 가족이나 친인척과 연락이 안 되거나 대가 끊긴 유공자가 6839명이며, 실제 활동이 가능한 유공자는 6842명으로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강서지사에는 2명의 생존 지사(유재창, 이태원)106명의 유족 등 총 108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싸우다 보니 생활이 여의치 않았고, 그 가족들도 일제에 수탈과 탄압을 받아 궁핍한 경우가 많았다.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경제·교육적 측면에서 혜택을 받지 못했고, 실제 관내 유공자 중 40%는 임대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일제 치하에서 똑같이 독립운동을 했다 해도 현행법상 1945814일 이후에 돌아가신 애국지사의 자녀에게는 1(1명의 자녀에게만)로만 수당 지급이 제한돼 있고, 그 손자녀에게는 지급이 되지 않아 지원금조차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

회원 상당수가 고령인 데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경제활동이 어려워 수당에 의존하며 생활하는 등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나라를 위해 남녀노소 불문하고 헌신한 독립유공자와 그들의 자녀를 위해 얼마 남지 않은 노후라도 조금이나마 편안해 질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주어지길 바랍니다.”

 

강혜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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